9시 37분차. 12분 뒤면 7호선을 갈아 타야 하는 군자역에 도착하고.. 5호선 맨 앞칸 문이 열린다. 앞으로의 시련을 알기에 나는 부리나케 계단을 두칸씩 뛰어 넘어 내려간다. 오늘도 어김없다. 저 멀리 갈아타는 통로 끝, 이제 막 진입하는 열차의 머리가 보인다. ‘아씨..’ 직장인, 학생, 젊은이, 아주머니, 아저씨 할 것 없이 저 열차를 타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사람이라면, 별 수 있나. 달려야지! 그래도 열차의 머리를 본 날은, 설렁 설렁 뛰어도 문 열리기 전에 세잎! 머리는 보지도 못하고, 느려지는 몸통이라도 본 날엔 …. ‘아우~’ 자 전력 질주!
일단 달리기 시작하면, 체면 따위는 잠시 버려 두자. ‘잠깐만 뒤뚱이면 돼..’ 이렇게 쎄게 달려가는데, 저기 저 앞 열렸던 문이 내 앞에서 딱 닫히기라도 해봐. 뒤뚱이며 달려온 것도 부끄러운데 타지 못하기라도 하면 더 부끄럽잖아. 신발 꼭 타야 한다구! 달리기도 예전 같지 않아서 남자들이야 죄다 날 앞서 나가기 일수고.. 가끔 무섭게 앞질러 가는 여자들을 발견할 때면, 너 뭐 육상 선수야? 종종 또각또각 힐에 추월 당하기라도 할땐, 내 다리도 예전 같지 않구나. 정말 무겁다. 힘들다!
이제 조금만 더 뛰면 될때쯤. 스크린도어의 노란불이 켜지고, 5호선 맨 앞칸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쏟어져 나오기 시작하면, 왼쪽으로 갈까? 아 아니 오른쪽? 우측 통행이지만 난 뒤로 갈수록 좋으니까 왼쪽으로 가야 하는걸. 운 좋게 사사삭 피해야해. 종이장 처럼 빗겨나가자! ‘띠로롱 띠로롱’ 소리가 아직 안 났으니까 여유 있을거야. 아직 안 닫히겠지? 아 이칸? 이문? 이 자린 더 탈 자리가 없어 보이는데? 저 줄은 이미 다 탔잖아 저리로 갈까? 달려오는 5초 동안 이 복잡한 관문들을 막힘 없이 통과해야 성공!
턱까지 차오르진 않아도 제법 가파진 숨을 고르며… 지하철 문 앞에 찡겨가는 내 모습을 창에 비춰보며… 저 멀리 나와 같은 열차를 타고 왔으면서 도 아직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며… 한번 ‘씨익’ 웃어주자. 이런게 바로 승자의 여유. ㅋㅋ 누구를 이겼다고? 개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여유. 묘한 중독. 그래 뭐 그런게 있다. 그렇게 그 7호선은 9시 58분에 청담역에 내려준다.
(사실 난 이 차를 타도 5분은 지각이다.)