힘이 들때, 아니 힘이 다 빠졌을때 콜라를 마시면 힘이 난다. 왜 이런 얘기를 했는지 이야기 해 줄께.
그러니까 나는 8월 군번이니까 10월에 제대했는데, 학교에 복학하려면 무려 1년을 놀아야 했단 말이지. 그러니까 그 노는 1년을 뭔가 보람차게 보내야 했는데, 뭐했겠니? 알바 했지. 전자제품 뭐라고 써 있었던거 같아. 적지 않은 월급에 기술도 배울 수 있다고 적혀 있었지. 장기 알바 구함이라 적혀 있던 그 알바 공고 말야. 겁도 없이 무턱대고 간 첫날. 내 눈앞에 펼쳐진건 정말 큰 트럭에 가득찬 식기세척기 박스 였는데 아직도 그 거대한 비쥬얼 충격은 머리 한 귀퉁이에 있다. 아무튼 그 식기 세척기, 주방 싱크대 밑에 설치하는.. 그러니까 빌트인 시공하는 그런 덩치 큰 식기세척기. 12인용이라고 했었어. 이름은 LG 트윙클. 박스 옆에 포장 무게가 적혀 있는데 무려 54Kg. 스티로폼으로 빙빙 둘러 싸여 있어서 포장된 상자의 키는 내 가슴 정도?
자, 저 덩치 큰 상자가 메칸더 브이? 태권 브이? 아 그러니까 변신로봇 처럼 좌우로 날개가 윙~ 하고 열리는 큰 트럭에 2단으로 꽉 채워져 있더라. 일단 그걸 내려야 한다는 거야. 그리곤 이제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인 신축 아파트 한집당 한대씩 집어 넣어야 한다는거지. 일단 트럭에서 내리려면 상자에 빙 둘러 묶여 있는 플라스틱 노끈을 양손으로 꽉 부여 잡고 등에 메어야 한다는 거야. 등에 멘 다음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야 하는 거고.
겁부터 나더라. 저 큰걸 과연 멜 수 있을까? 같이 온 여럿 중에 초짜는 나 하나뿐이었는데 주삣거리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고.. 자 해보자. 까짓거… 멨을까? 못 메더라. 어이쿠. 한 발 띄기가 무섭게 바닥에 쿵. 상자 바닥은 두꺼운 스티로폼으로 싸여 있지만. 귀퉁이로 떨어지면 세척기 발 하나쯤이 찌그러지거나 뭐 그렇게 돼. 쿵 하고 떨어뜨렸을때 사장과 그 주변의 표정도 머리 한 귀퉁이에 있다.
일단 바닥에 놓여 버리면 혼자선 못 멘다. 일어 날 수 가 없어. (아 오래 일하게 되었을때 바닥에 놓여 있는거 메는 사람이 하나 있긴 했다. 권실장이라고… 있어. 소 같은 사람.) 쪽팔리기도 하고, 좀 그렇더라. 두개째도 못 멨지. 세 개째도 그랬어. 결국 차에서 내리는 건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싣는거 하라더라. 엘리베이터엔 두개씩 쌓인걸 바닥에 질질 끌어 싣어. 온 몸을 다 써서 민다. 가슴, 무릎, 허벅지, 머리 쓸 수 있는건 다 써서 밀어. 꽉 차게 싣고 구석에 낑겨 탄 후, 한 층에 집 수 만큼 내리는 거야. (결국 나중엔 이게 제일 힘든 일이야. 무릎도 나가고…)
층층마다 다 부리면. 한집 한집 싱크대 앞으로 가져가는데.. 2단으로 쌓여 있을거 아냐. 그럼 위에 있는건 등에 메고 집으로 들어가고. 바닥에 있는건 또 질질 끌고 부엌까지 간다. 바닥에 걸리는게 있을 때 마다 살짝 살짝 들어 옮기면서 말야. 새로 시공된 마루는 두꺼운 골판지 같은걸로 다 덮여 있어. 마루 상하지 않게. 그러니까 일단 마루까지만 올리면 끌고 가는건 그리 힘들지 않긴 한데.. 나중에 익숙해 지고 나면 메고 가려 하지, 절때 끌고 가는거 좋아하는 사람 없다. 플라스틱 노끈에 눌려 손 마디 마디 실핏줄이 막 터지고 멍들고 그래…
그런데 난 메지 못했으니까 질질 끄는 것만 할 수 있었어. 트럭에서 한개도 못 내려서 부끄럽기도 하고.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. 뛰어 다녔다. 혼자. 미안해서… 어리버리한게 혼자 뛰어 다니니 꼬락서니 참 우스웠겠다.
끝나고 나니까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더라. 사장이 자기 오토바이에 태워주겠다고.. 그 조그만 오토바이 뒤에 아슬아슬 매달려 집까지 오는데 오늘 하루 내가 뭘 했나 싶더라. 사장이 요령이 생기면 다 멜 수 있다고, 아직 경험 없어 그런 거니까 푹 쉬고 내일 보자는데… 난 더 못할 것 같았어…..
둘째날.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또 나가긴 했는데. 난 정말이지 못 할 줄 알았어. 오전 내내 그렇게 죽을 썼지. 오후엔 다른 현장에 가야 한데. 못하겠다 말하고 집에 가려 했는데, 타이밍이 안 오더라. 다른 현장은 분당 한솔 아파트. 와 이게 기억이 나네. 그 아파트 이름이! 아무튼 거기 였는데. 여긴 식기세척기와 또 다른 무언가가 있더라. 오븐. 빌트인으로 설치하는 오븐. 무게는 비슷해. 크기도 별 차이 없고. 다만 이건 방향이 있어서. 잘못된 방향으로 메면 등이 많이 아파. 그 앞쪽 손잡이 있는 부분을 바로 메면 아프지..ㅋ
점심을 함바집에서 떼우고… 오후 일을 시작하는데… 오븐도 못 메더라. 와 정말 내가 한심했어. 이렇게 힘도 없고 요령도 없나? 질질 끄는 것만 하면서 땀으로 목욕을 했지. 정말 포기. 완전 그로기 상태가 되 버렸어. 한숨만 나왔어.
김연선. 연선이형. 우리 정말 친했었는데.. 나보다 4살 많았으니까 27살이었겠다. 그 형이랑 한 조가 됐는데. 3시쯤이었나? 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잠깐 쉬자고. 아파트 밖으로 나와서 담배 물고 아스팔트에 드러누워 버렸어. 라보. 흰색 라보. 경차 트럭 라보. 갑자기 탄산을 먹으면 기운이 난다며 그 라보 끌고 자기가 콜라를 사오겠데. 나야 뭐 마다할 이유도 없고.. 땡기더라. 공터에 신축아파트 단지밖에 없는데 어디서 사오겠다는 건지. 한참을 지나 형이 왔지. 1.5리터 콜라 페트병하고 보라색 환타였을꺼야 아마..
자기가 먼저 한참을 마시더니만, 날 주더라. 당연히 목도 탔고… 나도 한참을 마셨지. 한참을 들이키고, 꺼억~ 하고 트름하고 나니까… 근데 있잖아… 진짜 기운이 나는 것 같더라. 살 것 같더라. 가을이었지만 날이 꽤 더웠던거 같은데. 더위도 사라지는 것 같았어. 뭐랄까 황홀하기도 하고. 그 동안 몰랐던 콜라의 참맛을 스물셋 어린 청년은 그제야 깨달았던 걸꺼야. 그 아무것도 아닌 검정색 설탕 단물 따위의 맛을.. 마시고 바라 본 세상은 대수롭지도 않았다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는 느낌…
그렇게 콜라를 먹고 난 뒤에 말야… 메지더라. 식기세척기도 메지고, 오븐도 메지더라. 아직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비틀거렸지만.. 신기하게도 메지더라. 정말로! 메고서 부엌까지 걸어가 지더라. 난 지금도 그 때의 힘이 콜라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! 놀랍지 않아?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못 멨었다구. 그런데 갑자기 되더라니깐! 콜라의 기적 같은 거야.
그렇게 시작한 일을 꼬박 열 한달을 했어. 휴일도 잘 없고, 토요일 일요일도 일하고 새벽 같이 나가서 물건 내리고, 집마다 부리고, 한대 한대 설치하고.. 겨울 아파트는 둘 중 하나인데, 물 넣고 안 얼어터지게 보일러를 돌리던가, 아예 물 안 넣고 냉장고를 만들던가. 냉장고 아파트 정말 싫었지. 아직 샤시라도 덜 되어 있는 층에 가면 칼바람이 안녕 이래. 여름 아파트는 땀과의 전쟁이지 뭐. 제법 땀이 많은 나는 항상 웃옷은 땀에 모두 젖어 버려. 점심 먹기 전에 살짝 짜기도 하고 뭐 그래. 물론 11달 모두 현장에 있진 않았어. 현장일이 없을 땐 차를 타고 동네를 돌며 일반 가정집에 설치하거든.
한달쯤 일하니까 메는 것 따위 우습더라. 덩치는 비슷하지만 훨씬 무거운 “트롬” 이라는 녀석도 만났는데. 포장 무게가 아마 79Kg 이었을거야. 똑같아, 이것도. 그냥 요령일 뿐이더라구.
물론 그 뒤로 콜라를 꼭꼭 챙겨 마시거나 하진 않았어… 하지만 그 때의 기억 생생해. 그래서 난 기운이 빠지면 콜라를 찾곤 해. 지금도